무엇이 연구 중심 대학인가 :: 2007/03/29 03:37/과학기술
최근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는 고등교육기관이 늘고 있다. 고등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본분을 망각할 위험이 있다.
연구 중심 대학에서의 ‘연구’는 교육을 위한 연구이다. 교육기관은 결국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며 이것을 우리는 ‘교육’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이 인력이 연구 인력이 될 것이므로 ‘연구’를 중심적으로 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고급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연구 중심 대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학사과정과 대학원 과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연구 중심이니 대학원 중심의 교육을 중심으로 한다. 여기서 상당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교수들 스스로 ‘연구’의 의미를 왜곡하여 교육은 등한시한 채, 강의는 별 신경 쓰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과 지도학생들의 연구에만 전념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원 학생들은 그들이 올챙이 시절 학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기초적 소양을 착실히 쌓아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우수한 연구 인력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물과 같은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학생들을 위한 강의 준비에 부실한 교수들이 가끔 ‘연구’ 중심 대학의 교원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대학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진정 자신과 대학원 학생들의 지도와 연구에만 전념하고 싶다면 부실한 강의는 하지 말고 차라리 성실하게 강의할 수 있는 교원에게 강의를 맡겨야 한다. 우리의 연구 중심 대학들은 제도의 겉모습은 강의와 연구를 동등하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그 실상과 내부적 인식은 연구 성과가 좋은 교원이 곧 우수한 교원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과 평가 시스템부터 과감히 손봐야 한다. 우리 사회가 교수라는 직함과 함께 그에 따른 존경과 대우를 해 주는 것은 학자로서의 존경과 함께 이 시대의 지성들을 길러내는 훌륭한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교육기관이 순수하게 연구만 하는 교육기관이 되길 원한다면 대학원 과정만 개설해서 거기에 집중하며, 교육에 집중하고 싶으면 대학만 개설하기를 바란다. 처음에는 대학원만 가지고 있던 기관들도 각 기관들이 ‘자기 대학생들 대학원으로 끌어안기’에 힘입어 안정적인 학생 수급을 위하여 하나둘 대학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과정을 모두 운영한다면 강의 전문 교원과 연구 전문 교원을 특화하여 육성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양질의 강의 교육 서비스와 최고급의 연구 교육 서비스를 받는 고급 인력 양성 기관으로 발돋움하기를 바란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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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체육과 과학기술 :: 2007/03/29 03:36/과학기술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국내에 국제규격의 경기장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는 남자 하키 팀이 기적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지난 2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는 공식 등록 선수가 8명뿐인 스키 점프가 2개의 금메달을 따내었습니다.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을 딛고 훌륭한 성과를 거둔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지난 2002년 우리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아직 제대로 된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운동장이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무더기로 안겨주는 효자 종목을 직접 경험한 국민들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대한민국 이 지금까지 여러 국제 대회에서 거둔 성과는 세계가 깜짝 놀랄만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엘리트 체육이 일구어 낸 성과입니다. 우리의 체육 행정은 그동안 엘리트 스포츠 위주의 ‘보는 스포츠’였으며 단지 올림픽의 메달 수로 평가받아왔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볼 수만 있고 할 줄은 모르는 반쪽짜리 스포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체 수명은 선진국이지만 건강수명은 후진국이라고 합니다. 스포츠라는 것은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의 근간을 제공해 건전한 사회의 바탕을 이루어야 합니다. 선진국과 비교하여 체육 시설 및 국민들의 참여도는 20-30배씩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체육은 세계에서 경제 규모보다도 수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제 일부가 ‘하는 스포츠’, 전 국민이 ‘보는 스포츠’의 엘리트 체육에서 모두가 ‘함께 하는’ 생활 체육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물론 정당의 목적이 정권 창출인 것처럼 체육회의 목표는 승리라는 체육인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했습니다. 이제는 삶의 질을 향상할 시기가 아닐는지요. 과학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기술계는 반도체, 이동통신 등 경제의 효자 상품들을 개발하여 국익에 어마어마한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공계 기피라는 철저한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을 딛고 훌륭한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남자 하키 선수, 스키 점프 선수들이 과학기술계에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 박수를 받아야 하는 이들입니까? 우리는 세계 12위의 경제 신화를 이루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 전 국민의 일치단결을 통하여 얻어낸 성과입니다. 그러나 최근 경제 성장의 주요 엔진이었던 과학기술계가 좌초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역시 ‘엘리트 과학기술’이 기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 국민이 ‘과학 하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생활체육에서 엘리트가 탄생하듯 대한민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탄생하고 첨단 기술도 개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변의 환경이 미비하여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온 국민이 과학기술을 알고 싶어도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흔히들 과학기술은 어렵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축구공만 있으면 모두 축구경기 할 수 있듯이 과학기술도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TV에서 과학기술을 재밌게 풀어주는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입니다. 비록 금메달을 따지 못해도 즐겁게 뛸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입니다. 노벨상을 타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호기심을 가진다면 바로 과학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며 온 국민이 과학기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온 국민이 스포츠와 함께 하여 올림픽 1위, 월드컵 1위를 차지할 때 우리는 진정한 스포츠 강국이 될 것입니다. 온 국민이 과학 하는 마음으로 노력할 때 우리는 진정한 과학기술입국(科學技術立國)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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