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SCIENG 과학기자상 :: 2007/04/04 09:49/과학기술
얼마 전에 한국과학기술인연합에서 '제1회 SCIENG 과학기자상' 수상자를 선정했다. 한국일보 김희원 기자가 그 주인공인데, 심사 과정에서 좋은 기사로 꼽힌 기사를 몇 개 링크한다.
김희원 과학기자가 본 황우석 쇼크-진실에서 희망을 찾다 <상>젊은 과학자들의 고뇌 김희원 과학기자가 본 황우석 쇼크-진실에서 희망을 찾다 <중>난치병환자를 위하여 김희원 과학기자가 본 황우석 쇼크-진실에서 희망을 찾다 <하>과학계, 잃을 것은 없다 사람은 보는 것을 믿는다고? 천만에! 황우석 지지·반대파 인지심리학적 분석해보면… [기자의 눈] 과학연구가 올림픽인가 침술효과 규명 논문 자진철회 논란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硏 소장… 한의학계와 갈등 그리고 시상식에서 있었던 인터뷰이다. Scieng : 제 1회 Scieng 과학기자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김기자께서는 최근에 다른 여러 상도 받으신 것으로 압니다만... 현장 과학기술인들이 드리는 약소한 상이지만 Scieng 과학기자상 첫 번째 수상자가 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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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문을 닫아 걸어라. :: 2007/03/29 03:57/과학기술
[김우식 부총리 인터뷰] 대담=이규연 사회에디터 중앙SUNDAY -중국ㆍ인도ㆍ일본ㆍ미국 속에서 우리가 샌드위치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과기장관 회의에서 산자부 장관에게 부탁했습니다. 일본과의 기술무역수지 적자폭이 늘어나고 중국과의 흑자폭은 줄어들고, 샌드위치인데 기술유출을 막자고요. 국정원에서도 애쓰고 있는데 저도 그 얘기 합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 4월에 (대책을)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기술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큰 회사들이 중국에 공장을 세우면서 중국 기술자들 수백 명을 교육합니다. 조선ㆍ철강ㆍ기계ㆍ자동차는 우리의 핵심기술인데 그렇게 열심히 기술을 가르치면 그게 유출 아닌가요. 그걸 알면서도 이대로 둬야 되는 건지. 언젠가 국무회의 때 얘기할 생각입니다. 나가서 공장 짓는 건 몇 년 걸리지만 기술은 몇 분이면 가버리는 거거든.” 며칠 전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의 인터뷰이다. 그동안 정부의 기술유출 방지대책에 대한 우려가 많았는데, 그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많이 했으니까 생략하기로 한다 (관련 글). 다만 지금까지 과학기술부가 보여준 행태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굉장히 안타깝다. 정부 내에도 여러 행정부처가 존재하고 각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며 대책을 마련하고 서로 협의하여 가장 좋은 안을 만들어 내어야 할 것이고,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인'에 대한 고려, 장기적인 과학기술혁신 등에 대한 시각을 갖는 것이 과학기술부의 역할이라 할 것이다. 아직 부총리가 이야기한 대책이라는 것이 발표되지 않아서 정확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사실 합리적인 기술유출방지대책은 과학기술인 스스로가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누군가에 의해 도둑맞는다면,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되는 기업과 사회보다도 인생 자체를 도둑 맞는 것이 과학기술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기술유출방지대책은 도리어 우수 인력의 탈이공계 현상을 가속화시킬 뿐만 아니라, 국내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선진 해외 기업으로의 인력 유출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기술유출방지대책을 우려하는 것이 단지 인력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 등 인력에 관한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각국이 첨단 기술을 놓고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외국과 교류하고 좀더 배워야 할 기술이 많은 실정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해외 우수 연구소를 유치하고 (과학기술부 역시 이런 일에 적극적이다.), 다국적 기업의 연구센터를 국내에 유치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잘못 하면 이런 기술유출방지대책이 마치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처럼 우리나라도 기술사회에서의 고립을 자초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나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많은 핵폭탄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 러시아 등은 후발 국가들이 핵무장을 할 수 없도록 다양한 방지대책을 내놓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실익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노력해야 함은 부정할 수 없다. 기술이 부족한 데 비해 임금이 낮은 국가들은 선진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고 기업을 발전시키곤 한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삼성전자, 삼성SDI도 그 시작은 삼성-산요, 삼성-NEC였으며 한국반도체에서 그 줄기를 찾을 수 있는 삼성반도체 역시 미국 마이크론과의 합작, 기술협력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자동차 역시 첫 시작은 미국 포드와 함께였다. 물론 당시 해외 협력선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핵심, 원천 기술을 당장 내놓지는 않았다. 일부만 보여준 것에서 우리가 부단히 노력해서 찾고 개발한 기술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장관의 발언으로 살짝 엿볼수 있는 기술유출방지대책은 단지 기술혁신의 문제를 넘어선 이야기를 하는 거 같다. 이제 우리는 해외 공장 설립을 하지 말자고 한다. 정확히는 해외 공장은 짓되 기술을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 그럼 어느 나라가 국내 기업의 공장을 유치할 것인가? 우리 기업도 바보가 아닌 이상, 마구잡이식으로 기술을 퍼주지는 않을 것이다. 적절한 수준에서 기술을 가르치고 저가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현지의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싫다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은 정부에서 해외 공장보다 국내 공장이 훨씬 더 기업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각종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령 임금 상승 억제를 위해 모든 노동조합 활동을 중단시킨다거나, 공휴일을 아예 없애버린다는 등의 대책이 있지 않겠는가. 아니면 모든 노동자의 직장을 정부에서 정해주고, 임금도 정부에서 공시해버리면 어떻겠는가? 예전 반공교육을 투철하게 받던 시절, 교재 속의 북한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던가. 설마 이런 이야기가 곧 발표될 대책에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국내 기업은 돈벌지 말고 망해 버리라는 이야기인가? 북한은 핵개발을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그 뒤를 이으려 하는 것인가.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언제나 쇄국인 것인가? 이 인터뷰가 기사화되면서 진의가 왜곡되고 앞뒤가 다 잘려서 본의가 다 사라진 것인가? 그렇다면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기 바란다. 여하튼 4월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사뭇 기대된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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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마님 :: 2007/03/29 03:56/과학기술
미국 프로야구 팀 중 최고의 앙숙은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다. 사실 전세계 프로스포츠계의 최고 앙숙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거 같다. 라이벌답게 이 두 팀은 올시즌 초부터 지구 1, 2위를 다투고 있는데 계속 보스턴이 1위를 달리고 양키스가 그 뒤를 쫓아왔었다. 그런데 8월 들어 양키스가 1위로 올라섰고 레드삭스는 침체에 빠졌다. 특히 지난 주말에 있었던 5연전이 압권이었는데, 예전에 우천으로 순연된 경기까지 포함해서 4일 동안 보스턴에서 다섯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 1위 양키스와 레드삭스의 게임차는 불과 1.5게임이었다. 그러나 보스턴은 이 모든 경기를 양키스에게 내주며 6게임 반차로 격차가 벌어져 지구 1위는 거의 힘든 상황이 된 거 같다. 거기다가 어제는 곧바로 있었던 LA Angels와의 경기에서도 지고 말아 6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양키스와의 라이벌전이라서 특별히 분발했음에도 5연패를 하고 만 것이 최근 레드삭스의 부진과 관계가 깊은데, 보스턴의 8월 성적이 아주 좋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이 주전 포수 Varitek의 결장이라고 생각된다. 7월 31일 이후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그 뒤로 레드삭스는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특히 불펜투수들의 방화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흔히 포수를 안방마님이라고 부르는데, 원래의 역할에 비해 대중들의 관심은 크게 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포수는 단지 투수가 던져주는 공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투수의 볼배합을 리드하고 수비위치를 조정하는 등 작전본부에 있는 감독을 대신한 야전사령관의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다. 그리고 포수는 동네야구에서 해 봐서 알지만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그래서 대개 포수들의 타격은 썩 훌륭하지 못하고, 마운드 위에 우뚝 서서 쉼없이 공을 뿌려대는 투수나 엄청난 비거리의 홈런을 쳐대는 강타자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주전포수의 결장은 지구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던 보스턴 레드삭스를 수모의 현장으로 이끌 만큼 치명적인 것이고, 대개 이쯤 되어서야 비로소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새삼 포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야구 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곳에서 이런 안방마님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 조직이 실적을 이루어 내었을 때 실제 뒤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과실도 별로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어수룩해서일 수도 있고 조직을 이끄는 사람의 잘못일 수도 있다. 혹은 조직의 생리상 회사가 일구어낸 업적은 모두 신임사장의 공으로 신문의 인물 인터뷰 란을 장식하기도 한다. 어쩌면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에서 조직을 이루고 함께 힘을 모아 성과를 이루는 것에 누구 하나의 독보적인 치적을 칭찬하기 힘들지도 모르고, 어쩌면 애시당초 각자의 기여를 셈한다는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조직이 계속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에게도 과실을 충분히 주어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리더가 갖추어야 할 능력일 것이며,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과 도리가 아닐까 한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수시로 놀라운 연구성과들이 발표되는데 대개 이 때 주목을 받는 것은 해당 연구팀의 교수이거나 책임을 맡고 있는 고참 연구원들이다. OOO 교수가 새로운 물질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그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것이다. 가끔 연구팀이라는 명칭을 쓰는 기자들이 있긴 하다. 그래도 아직 대부분의 보도에서는 수많은 일선의 연구원들이 모조리 무시되기 쉽상이다. 아이디어를 함께 다듬고 연구방향을 설정하고 진행과정을 채찍질하는 교수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선 연구원들은 9이닝의 경기 시간 내내 쪼그리고 앉아서 힘들게 공을 받아내고 있는 포수일지도 모른다. 황우석 전 교수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져준 것들이 참 많은데, 어쩌면 교수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인력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핵심적인 연구의 상당 부분이 교수가 아니라 이들 연구원, 대학원생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된 것도 하나의 과실일지 모른다. 조직의 아래부터 차근차근 경험하며 조직의 생리와 관리 방법을 교육을 통해 혹은 몸소 겪으며 성장한 회사나 연구소의 경영인과는 달리 대학 연구실의 교수는 처음부터 해당 연구실의 최고관리책임자였으며, 교수들에게 조직 관리 등에 관한 재교육을 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구실 운영은 교수의 타고난 개인 성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학생들의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는 경우가 잘 없다. 심한 경우 논문 저자 순서 빼앗기고, 인건비를 제대로 못 받는 것을 넘어서서 교수 개인의 주머니를 채우는데 이용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야구 선수처럼 부상당했다고 잠시 경기를 쉴 수도 없고, 거액의 돈을 받고 다른 연구실로 트레이드 되기도 힘든 연구현장의 안방마님들이 억만금의 대가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니다. 적절한 대우를 받고 연구에 보람을 느끼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안방마님들이 더이상 못 견디고 떠나버리면 레드삭스처럼 최악의 연패 수렁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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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이라는 마녀사냥 :: 2007/03/29 03:55/과학기술
최근 엄청난 가치를 가진 기술을 빼내려는 몰염치한 연구 인력의 시도를 사전에 적발하였다는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해외에 유출할 첨단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기쁜 일일 수도 있고, 자칫 엄청난 국부유출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일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박수 받아 마땅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술유출 사건을 한 꺼풀 벗겨보면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기술수출국이기보다는 해외의 선진 기술을 들여와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섣부른 기술유출보호정책은 다른 나라와의 마찰을 불러오거나 도리어 국내 기술 발전을 막을 가능성이 있다거나, 본래 기술은 교류를 통해 발전하며 기술유출방지대책이 기술개발체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도 기술유출 사례는 조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장비기술을 유출시켰다며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한 사건이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들이 그렇듯이 발생 당시에는 신문의 1면을 화려하게 장식하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는 세상의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현실에서 과학기술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성장동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잘못된 기술유출방지대책이나 언론, 사회의 반응은 이런 성장동력을 크게 해치는 또 다른 동력이 된다. 기술유출과 관련된 보도가 나오면 과학기술인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모임 등에는 해당 기술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곤 한다. 근데 대부분이 첨단기술이기보다는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기술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결론이 나올 때가 많다. 대개 회사는 연구인력의 이직을 막기 위해 일단 기술유출이라는 혐의를 씌워 수사를 의뢰하고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기소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세부적인 기술 현황을 자세히 알기 힘든 검찰과 언론, 국민들은 엄청난 투자비가 들어가고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를 가진 최첨단 기술이라는 기업의 주장을 특별한 검증절차 없이 받아들이기 쉬우며, 이 과정에서 해당 연구인력은 국민과 역사 앞의 중죄인이 되고 만다. 사실 최근의 기술유출과 관련된 고소는 실제 기술유출이기 보다는 연구원의 전직을 막기 위해 일단 고소를 통해 공권력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설령 재판과정에서 무죄 판결이 난다 하더라도 해당 인력은 다른 회사로의 전직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한 최소한 몇 달은 연구의 공백이 생기기 마련인데, 날로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전쟁의 시대에서 이 정도의 공백은 완전히 무장해제를 하고 전쟁터를 떠나야 할 수 밖에 없는 긴 시간이다. 이것은 올바른 대우를 해주기보다는 제도라는 이름으로 족쇄를 채워놓으려는 노동 탄압적인 측면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과학기술인의 연구인생을 짓밟아놓는 인권탄압이 아닐 수 없다. 과학기술인들은 아직도 외환위기 당시 제일 먼저 회사 밖으로 내몰렸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 문제 또한 이때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올바른 대우를 받지 못해도 열심히 국부를 창출한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사회가 보여준 모습은 너무나도 냉대했다. 사실 과학기술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가치이다. 정치, 경제, 행정 체계 등은 각 나라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따라서 특정 국가의 경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휴대폰 기술에 큰 차이가 있을 수는 없다. 바꿔 말하면 과학기술인력은 외국에 가서도 본인의 특기를 잘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회사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자칫 잘못하면 범죄자로 몰리기 쉬운 우리 사회를 떠나 외국 기업, 해외 이주를 결심하는 과학기술인이 느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부유출이 아니겠는가. 과학기술인이 기술유출방지대책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창작물이 도둑맞는다는 것은 단지 금전적인 손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이 담긴, 혼이 담긴 결과를 빼앗기는 것은 과학기술인의 삶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과학기술인들의 우려는 너무나도 친기업적인 기술유출방지와 관련된 사회의 움직임이다. 제대로 과학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수사 인력을 양성한다거나 기술개발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통해 회사와 인력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등의 긍정적 전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는 기업과 언론의 과장된 피해액 산출에 휩쓸려 과학기술인들에게 부당한 족쇄를 채우고, 연구현장을 떠나게 만들고 이들 인력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사냥터가 되어 가는 거 같아서 안타깝다. 진정 과학기술이 이 나라의 성장동력이 맞기는 한 것인가.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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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과학도의 반성 (중앙일보 2006년 1월 2일) :: 2007/03/29 03:54/과학기술
최근 황우석 교수 연구팀은 과학기술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문을 한꺼번에 두 개나 열어버렸다. 바로 연구 윤리 위반과 논문 조작이다. 윤리와 진실을 저버린 이들의 학자적 생명은 회복 불가능의 치명상을 입었으며, 과학기술계와 대한민국의 신뢰 또한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국민이 입은 상처는 그 무엇보다도 큰 손실이며, 과학기술계는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기는커녕 실망과 배신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국민에게 가슴깊이 사죄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황우석 신드롬'에 취해 있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열풍에 휩싸였던 것처럼 말이다. 몇 년 전부터 회자되는 이공계 기피 문제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큰 위기다. 하지만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불안해하고 있던 찰나에 터져 나온 '황우석 신드롬'은 국민에게 월드컵 이상의 희열과 희망을 갖게 했으며, 많은 과학기술인은 이로 인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물론 그것이 과학기술인들에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으며, 이것 역시 과학기술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 사건은 역사의 부끄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하지만 혹자는 이번 파문이 해외가 아닌 국내의, 특히 젊은 과학기술인들의 손에 의해 밝혀졌다는 점에서 희망을 찾기도 한다. 그렇다고 젊은 과학자를 제외한 과학기술인들이 조작의 문화에 익숙하며, 연구 윤리는 내동댕이쳐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과학의 발전은 기존의 이론과 법칙에 의문을 갖고 보완하며 때로는 부정하는 가운데 이뤄지기에 모든 논문은 과학기술계 내부의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되고, 거짓은 언젠가 밝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길이 험난한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없었더라면 이번 파문도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을지 모른다. 필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 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며 부정부패 혹은 구조적 모순의 사례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무척 힘들었던 경험이 많다. 그 어떤 분야보다도 내부 고발자에 대한 처벌이 혹독한 곳이 과학기술계다. 단지 한 기관에서의 퇴출이 아니라 관련 학계에서의 영원한 추방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뜻 총대를 멘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더군다나 대학원생이라도 이미 학생이기보다 연구원.학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젊음과 열정이라는 카드가 통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지금 드러난 문제점은 단지 논문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체계 구축이나 윤리 의식 강화만을 통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부실이 아니다. 현장의 과학기술인이라면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현장의 문제점이 제대로 사회에 전달되지 못했던 것은 우리 스스로의 참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용기를 내어볼 만하지 않은가. 연구과제의 합리적인 기획과 투명한 선정, 정확한 성과 평가, 비정규직 연구원과 대학원생을 비롯한 과학기술인에 대한 적절한 대우, 제대로 된 국가혁신체계 구축 등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줄기세포 논문의 의문점처럼 과학기술인들이 주도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인들이여. 이제 관심의 초점을 한두 개의 논문 오류에서 전체적인 과학기술 시스템으로 옮겨보자.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과감히 펼치고 함께 고민해 보자.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이번 논란의 본질적인 문제는 잊혀지고 말 것이다. 과학기술계의 당당한 혁신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지금의 고통을 잊지 말고 부지런히 나아가자. 우리에게는 분명 희망이 있지 않은가.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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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하기 쉬운 과학문화활동의 오류 :: 2007/03/29 03:52/과학기술
과학기술은 어려운 것인가? 그렇다. 과학기술은 어려운 것이다. 굳이 수식이 난무하는 머리 아픈 과학기술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들의 깊이는 오랜 인류의 역사, 학문 탐구의 역사만큼 깊다. 단지 수학을 이해하지 못해서 과학기술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수학이 없는 학문도 그 깊이를 모두 드러내면 어렵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대중들은 특히 과학기술이라는 학문을 어렵다고 느끼는 것일까? 가끔 과학기술인의 대중 강연을 들어보면, 연구실에서 펼쳐지는 세미나 시간에 적합한 자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한 때가 있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평생을 바쳐서 탐구해 온 결과물을 단시간 내에 대중, 특히 과학기술과 거리를 두고 살아온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강연자로 나선 과학기술인의 과학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과학기술인에 대한 과학문화 관련 교육을 강화하면 해결될 문제인가? 아니면 다른 학문과는 달리 과학기술은 애당초 쉽게 풀어쓸 수 없기 때문일까?
막연하게 많은 이들이 대중이 과학기술을 이해하여야 그들이 과학기술인의 역할을 인식하고 연구개발활동의 위상을 높이 평가함은 물론 국가의 과학기술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문화활동은 비단 과학기술인을 위하거나 국가경쟁력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학창시절을 통해 당장 나의 직업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학문들을 공부해 왔다. 사회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최소한의 교양일 수도 있고, 알아두면 두루 편한 지식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과학기술 또한 이런 교양과 기초지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이 모두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점에 가보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할 수 있다. 문학작품에서부터 학생들의 참고서까지. 그리고 마치 5일장에 온 것처럼 잘 팔리고 관심 있는 분야의 책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지만, 별로 인기 없는 코너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주로 서점이라는 시장에서 잘 팔리는 분야는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참고서와 문학작품, 그리고 먹고사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제, 경영의 큰 분류에 해당하는 책들이다. 최근에는 외국어, 레저 관련 책들도 잘 나가는 부류에 속할 것이다. 시장의 자생적 기능은 매우 뛰어나, 시장의 주체들이 스스로 필요하고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에 억지로 투자하도록 누군가가 강요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실 이런 시장의 절대자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과학문화활동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시민들이 매일 뉴스에 나오는 주식시세표와 환율, 금리 등의 복잡한 얼개를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는 정보이며 관심을 가지고 자꾸 보다 보니 어느새 경제상식이 부쩍 늘어있음을 보게 된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다. 경제상식처럼 삶에 보탬이 된다면 왜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는가. 과학문화활동의 기본은 과학기술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알리는 것이다.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데 어찌 배우지 아니하겠는가.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대개 나오는 이야기는, 신기술이 경제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쳤다거나 새로 개발한 기술에 대한 법칙과 설명을 늘어놓기 쉽다. 이것은 과학기술의 본질도 아니며, 어려운 과학기술을 대중과 더 유리시킬 뿐이다. 어린 아이들이 참여하는 천문캠프, 실험교실 등에서 보여주는 학생들의 관심도는 굉장히 높다. 과학기술을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지적 활동은 비단 과학기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것이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대개 신기술의 놀라운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주거나,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승리에 감동의 눈물과 박수를 보내도록 하는 것들이 많다. 이런 과학문화활동은 도리어 ‘어려운 기술은 과학기술인에게’ 라는 마인드를 국민에게 심어주지 않을까? 저 기술이 놀라우니 나도 저런 것을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들리는 만무하다. 과학의 대중화는 현존하는 과학원리를 대중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분야에서 바라보는 탐구의 정신과 시각을 대중화하는 것이다. 이런 기초들이 쌓여서 과학문화의 금자탑을 쌓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학(science)이라는 단어의 뿌리가 ‘안다’라는 라틴어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모든 과학기술인이 과학문화활동의 최전선에 뛰어들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연구개발현장에서 일하는 과학기술인의 기본은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이다. 거기에 부가적으로 사회봉사활동도 할 수 있고, 과학문화활동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지나치게 현장의 인력들이 과학문화활동의 전방에 뛰어들라고 강요한다면, 과학기술계의 근본 경쟁력을 해칠 수도 있다. 다만 연구성과를 널리 알리는 것을 비롯하여 온국민에게 과학기술 마인드가 확산되는 것이 비단 학문의 고립화를 막을 뿐 아니라 연구개발인력 스스로에게도 보탬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는 있다. 그리고 만약 최전선에 뛰어들지 못한다면 보급을 담당하는 병참의 역할이라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쟁은 최전방의 전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과학문화 컨텐츠를 생산하고, 심정적, 금전적 지원을 보낼 수도 있다. 과학문화활동이 재미있고 관련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보다 과학문화활동에 매진하도록 하고,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은 사람에게 활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적성에 맞지 않은 사람이 나선 일선활동은 자칫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우리의 과학문화활동은 부실건축물이 아니라 튼튼한 기초를 가진 인텔리전트 빌딩이 되기를 소망한다. 과학기술관련 서적과 홈페이지 양산, 학생들을 청중으로 동원하는 대중 강연회 개최 등은 손쉽게 준비하여 과학문화활동의 성과물로 내놓기에 적합할지 몰라도 이것이 과학문화활동의 전부도 아니며 중요한 부분도 아니다. 활동의 방법론을 찾아 좌판을 먼저 벌이기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팔아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단골로 잡아둘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당장의 판매실적만을 논하기에는 과학문화활동이 가지는 중요함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http://www.sciencetimes.co.kr/data/article/11000/0000010213.jsp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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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을 사수하라 :: 2007/03/29 03:50/과학기술
‘모든 것을 최대한 단순화하라. 하지만 더 단순화하지 마라. (Everything should be as simple as possible, but no simpler)’
얼핏 보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올해는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 상대성이론이 발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로, 세계가 ‘2005 세계 물리의 해’를 기념하고 있다. 단지 물리학계뿐만 아니라 인류 세계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천재가 남긴, 이 알 수 없는 말의 진의는 무엇일까. 물리학이란 기본적으로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자연은 미물인 인간이 접근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거대한 존재인지라, 물리학의 영역에서는 실제의 자연을 단순화시키고 많은 부분을 생략하여 모델을 개발하고 법칙을 세운다. 따라서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라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는 물리학자들이 언제나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단순화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 낸 성과들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정확한 이론으로 달나라에 로켓을 보내기도 하고, 최첨단 IT 혁명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가장 근본이 될만한 특징마저 단순화하고 생략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단순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을 미처 찾지 못했거나 잊어버렸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실수이다. 즉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마저도 망각해 버린 것이다. 이공계 출신의 인재들은 대부분 연구개발 현장에 종사한다. 이러한 현상이 지금의 이공계 위기를 불러왔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개발 현장을 잘 모르는 정책 입안자들이 과학기술 정책을 다루고, 기술을 모르는 경영인이 기업의 경영을 이끌었기에 과학기술인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고 지금의 위기가 찾아왔으니 과학기술인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지 않는 과학기술인들이 과학기술을 대중과 분리시켜 소수만이 점유할 수 있는 어려운 학문으로 만들었고, 국민들의 과학기술 마인드가 부족하여 이공계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이공계 출신이라고 하여 그 역량을 연구개발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의학, 법학, 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키는 것이 전체적인 국가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라고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자칫하면 기본을 망각해 버리기 쉬운 단순화의 과정이다. 과학기술의 기본은 현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현장은 굉장히 좁은 영역의, 첨단 과학기술만을 다루는 연구개발 현장이 아니다. 연구개발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제품을 만드는 것 또한 과학기술의 현장이며, 이공계 인력의 고유 영역에 속한다. 이공계 문제의 해법은 소수의 천재가 호의호식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현장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대부분의 이공계 인력이 제대로 대우받고 편안하게 자기 업무에 종사할 수 있을 때 이공계 문제 해결이라는 터널의 종점이 있는 것이다. 최근 일부의 움직임을 보면 과학기술인이 단지 연구개발 현장에만 머무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일로 치부하고, 의학․법학 전문대학원을 비롯하여 공무원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이 이공계 문제 해결의 핵심이며 개인의 성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해당 분야에 재능과 관심이 있는 과학기술인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력이 타 분야로 진출한다면, 이것은 이공계를 벗어나려는 대탈출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마저 잊어버린 단순화는 작위적이고 잘못된 결과를 불러온다. 일순간 제대로 된 모델과 법칙을 세운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조그마한 응용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쉬운, 모래성 법칙을 불러올 뿐이다. 기본을 잊지 말자. 올해를 세계 물리의 해로 만든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남기는 이공계 문제 해결의 가이드라인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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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방지법 - 과학기술인을 위한 국가기술보안법! :: 2007/03/29 03:49/과학기술
최근 휴대폰 기술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첨단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기사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액을 산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지라, 계산하는 사람마다 그 액수가 다르기는 하지만 국가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빈약한 국가인지라 예로부터 우수한 머리와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산업이 국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갈수록 전세계의 무역장벽이 사라지고 기술전쟁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어 자국의 기술보호는 모두에게 중요한 화두이다. 척박하기만 했던 우리의 기술력을 생각할 때 그나마 조금이라도 유출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을 바라보며 다소 만족을 느끼는 국민도 있다.
산업자원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런 첨단기술을 보호하고자 소위 기술유출방지법, 혹은 국가기술보안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인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기술유출방지법안의 정확한 이름은 ‘첨단기술유출의방지및보호에관한법률(안)’이다. 이 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핵심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대학과 연구소 등을 보호대상 기관으로 지정하며, 기술 매각이나 해외 투자, 협력 등의 활동을 신고 또는 승인 대상으로 삼게 된다. 또한 보호대상기관에는 보안관리사를 두고 연구개발인력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정부가 벌여 인력 이동을 통한 기술유출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악의적인 산업스파이를 막는 좋은 법안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1만명이 넘는 과학기술인들이 전직제한을 비롯한 기술유출방지대책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했으며, 외환위기 때의 대량 해고에도 조용히 당하고만 있었던 과학기술계가 들썩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외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기술을 몰래 팔아넘겨 호의호식하겠다는 의도일까? 그렇지 않다. 과학기술인들은 다른 직종에 비해 국가 소명의식이 강한 편이다. 또한 자신이 땀 흘려 개발한 기술을 도둑맞는 것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며, 해외로 기술이 유출되었을 경우 국내 관련 산업이 치명타를 입게 되어 도리어 자신들이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과학기술인들은 적절한 기술유출방지대책을 누구보다도 갈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책은 방향 설정에서부터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대책의 기본적인 방향이 규제일변도이다. 지나친 규제는 기술과 지식의 확산 및 활용을 제한하여 산업 전체의 기술개발 혁신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 이번 법안에서는 기술과 유출의 정의와 적용기관의 범위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포괄한다. 따라서 건전한 기술의 교류도 미리 겁을 내어 하지 않을 것이며, 정상적인 인력 유동에도 제약을 가져올 것이다. 학회장에서의 산학연 협동연구 성과 발표 때문에 기술유출범으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으며, 동종업체에 종사하는 친구들과 갖는 사소한 만남도 기술유출을 음모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기술은 철저히 보호해야 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고립된 국가의 경제가 세계 질서 속에서 자리 잡을 수 없듯이, 고립된 기술 개발은 최근 기술 동향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고 불필요한 투자를 필요로 하게 되어 점점 낙후된 기술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해외의 유수한 연구센터를 국내에 유치하려 해도 국내의 기술성과를 해외와 활발히 교류하지 못한다면 굳이 국내에 연구센터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부족한 면이 너무 많다. 해외의 선진기술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계발하기에도 부족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조치의 혜택을 볼 기업은 상당수의 대기업들이다. 이미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고, 상당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 이번 대책으로 인해 보다 강화된 보안조치로 과학기술인을 회사에 잡아둘 수 있게 된다. 그리 되면 앞으로 중소기업은 더욱 고급 인력을 유치하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단순한 노동집약적 산업이 중국 등의 저임금 공세에 밀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다. 서서히 첨단소재산업 등의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구조를 재편해야 하며, 중소기업들 또한 상당한 기술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이나 연구소 출신의 벤처 창업도 위축될 우려가 크다. 대학이나 연구실에서 기업체와 수행한 연구과제, 혹은 국가 연구개발 사업으로 개발한 성과물을 통한 창업이 쉽지 않아질 것이다. 소위 산업인력의 유동 흐름이 막히는 동맹경화에 빠질 수 있다. 이번 대책의 발표로 과학기술인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법안에서는 모든 과학기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감시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극히 일부의 부정적인 양심불량자 때문에 모든 과학기술인을 감시, 통제하여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어찌 보면 기술유출보다도 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대책이 시행될 경우 아예 적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해외로 이민을 가겠다는 응답이 전체의 60%를 넘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술유출이며 국부 손실이 아니겠는가. 첨단기술의 유출방지는 보다 근본적이며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단지 틀어막는 규제가 아니라 혁신까지 고려한, 흐름을 원활히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무조건 회사를 옮기고 기술을 빼내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직무에 만족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유출도 막고 기술 개발도 촉진시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가령 일정기간 동안 회사를 옮기지 못하도록 하는 제약을 걸어야 한다면 그 기간에 해당하는 동안의 임금을 보전하는 등의 적극적인 과학기술인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의 발명에 대해 일정 부분의 보상을 지급하는 직무발명 보상제도의 확립을 통하여 직무 만족도를 높이고 타 업체의 불순한 손길로부터 과학기술인을 보호하는, 사고의 틀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의 한 기업은 발명인에게 적절한 직무발명 보상을 해주지 않아, 인력도 미국의 대학으로 떠나버리고 소송에서도 패소하여 200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보상을 해주게 생겼다. 이야말로 호미로 막을 것을 서까래로 막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재의 법안은 모든 기술, 모든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술확산과 학술활동 저하를 불러올 수 있는 포괄주의적 규제를 나열주의적인 대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가치와 파급효과가 큰 기술들을 특별히 지정하여 보호하며, 급변하는 기술 수준에도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가의 핵심적인 기술은 산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초적인 연구를 담당하는 학교에서부터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체까지, 막힘없는 수도관이 연결되고 깨끗한 물이 콸콸 흘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범부처적 대응이 필요하다. 흔히 과학기술이라고 하면 과학기술부가, 산업기술은 산업자원부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과학기술에 대한 몰이해가 아닐 수 없다. 과학기술인력양성은 교육부, 민군겸용기술은 국방부, 보건기술은 보건복지부 등. 과학기술과 관련이 없는 부처를 찾기 힘들다. 이번 법안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만들어진, 전형적인 규제 일변도의 만들기 쉽고 생색내기 쉬운 법안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장기적인 국가 발전을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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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경제의 '기초'다. (한겨레 2004년 5월 31일) :: 2007/03/29 03:47/과학기술
이번 주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은 2주째 ‘블랙 먼데이’를 연출했다. 소위 삼재(三災)라 할 수 있는 유가 급등,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 중국의 긴축정책의 폭탄에 세계 증시가 불안한 가운데 우리 주식시장도 폭풍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얼마 전만 해도 주식시장은 종합주가지수 1,000시대의 재개막을 노렸고,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점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광에서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97년의 외환위기를 겪은 국민들은 작은 경제 적신호에도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최근의 상황은 그렇지 않아도 살얼음판의 경제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주기 충분하다. 특히 그동안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 주던 수출 시장이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긴축정책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 노사 문제를 비롯한 내부 갈등 요소도 앞길이 밝지만은 않다. 이런 경제 위기의 원인은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 열풍, 과다한 비정규직 문제, 기업경영의 불투명성에서부터 주식시장의 기초체력 부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부족 등. 각자 제각각의 원인과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신용카드 등 금융 부실과 신용불량자 문제도 해결해야 하며, 청년 실업 문제도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이렇듯 우리 경제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매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97년 외화위기 직전 정부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기초경제여건)은 튼튼하기 때문에 걱정 없다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지금도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경제의 기초를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중요한 펀더멘털 하나가 빠진 채 위기 탈출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바로 과학기술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1,600억 달러가 넘는다. 경상수지도 흑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으니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외환보유고가 지금의 수십배가 된다 한들 진정한 펀더멘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외환보유고는 홍수에 무너진 둑을 응급복구하기 위해 비축해둔 모래주머니에 지나지 않는다. 외환위기 직후 우리 경제는 잠시 고공 흑자 행진을 펼쳤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 회복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세계 일류기업이라고 손꼽히는 삼성전자의 위상은 대단하다. 그러나 아직 미국, 일본의 유수 전자 산업체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원천기술이다. 이런 원천기술이야말로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쌓는 법을 연구하는 것이며, 기상 예측 능력을 배양하여 미리 홍수에 대비할 수 있게 만드는 비책이다. 비단 원천기술 뿐 아니라 생산․공정 기술을 비롯한 전반적인 과학기술 능력 향상이야말로 경제의 펀더멘털이 아닐까 한다. 물론 과학기술이 경제의 모든 주춧돌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금융 시스템을 확립하고 다양한 방면의 인재를 양성하여 이들을 적극 활용하는 등, 모든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펀더멘털일 것이다. 다만 이런 펀더멘털 중에서 인재 양성과 더불어 긴 안목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며, 보다 근본적인 경쟁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이 과학기술이지 않을까 한다. 지난 외환위기 당시 각 기업체들은 연구개발인력을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렇게 거리로 쏟아져 나온 과학기술인을 보며 서서히 이공계 기피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공계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당장 1,600억 달러로 외환위기를 막고, 자본을 유치하여 경기를 부양한다 해도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면 건강한 펀더멘털은 없다. 단지 튼튼해 보이고 일류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을 불러올 뿐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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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 2007/03/29 03:44/과학기술
우리나라의 지역에 따른 불균형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과학기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대전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의 연구비는 전체의 74%에 이르며, 연구 인력도 67%나 된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2007년까지 지방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 비율을 40%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지방의 과학기술의 발전은 해당 지역의 산업 발전을 선도하여 지방 혁신을 이루는 것은 물론 국토가 고루 성장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좋은 원동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단순한 숫자놀음, 나눔을 통한 지방 과학기술혁신이 옳은 방법인가는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자원이 빈약하고, 세계 강대국에 비하여 국토가 좁고 인구가 적어 적합한 발전 모델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 또한 모든 분야를 발전시키기에는 주변 여건이 충분하지 못하여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적인 성장을 하여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각 지역마다 어느 정도의 적절한 과학기술 자원 재분배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막연히 지방에도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명제 아래 단순한 자원 나누기만 이루어진다면, 그나마 척박한 환경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과학기술계의 효율적 시스템을 해칠 수 있다. 각 지역에 적합한 발전 모델이 제시되고 이 모델에 맞춘 지방 과학기술 활성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지방에 대폭 증액되는 연구비를 바탕으로 기존의 연구개발 인력을 지방으로 재배치하거나 자체적으로 양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연구개발비의 증액만을 통하여 지방 과학기술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지방에서 인력을 수급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연구개발 활동의 핵심은 막대한 연구비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시스템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중심에 있다. 지방을 벗어나 수도권으로 탈출하려는 사회적 고질병이 고쳐져야만 한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인력의 불균형은 산업계와 학계 사이에도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 박사연구원의 72%가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그에 비해 국가 연구개발비의 75%는 박사연구원을 15%밖에 확보하지 못한 산업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국가 과학기술경쟁력 뿐 아니라 산업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방 과학기술력 강화도 학계와 산업계의 자원 분배라는 측면을 고려하여야 한다. 지방 과학기술 육성은 각 지방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동력이 성과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지방의 산업 발전이 필수적이다. 지방 과학기술력 강화가 지방대 육성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지방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서는 적합한 지역 클러스터 모델이 제시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대학은 적합한 분야의 우수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연구소를 신설 혹은 이전하고, 지역 산업 육성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기업들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이들 기업에 적절한 연구개발 환경이 뒷받침될 때 우수 연구개발 인력이 클러스터 내에 남아 활발한 연구개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진정한 지방 과학기술 진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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