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것 :: 2007/12/12 06:31

얼마 전에 KAIST 물리학과 학과장께서 Boston에 오셔서 몇몇 사람이 모여 저녁 먹을 일이 있었다. 그 식사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원래 주제는 최근 KAIST가 박사를 갓 졸업한, post-doc과 같은 박사후 연구과정 경력이 없는 신진인력도 교수 채용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 중에 학과장께서 post-doc 경력이 없어도 그 사람이 박사를 기를 수 있느냐에 관한 말씀을 하셨는데, 새삼 가르치는 선생의 자질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하는 건데, 어느 순간 또 교수라는 직업은 공부하고 연구하기 이전에 가르치는 자리라는 점을 또 간과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사람을 가르치는 직업을 갖기 위한 마음가짐이나 자세, 능력 등에 대한 생각을 해보곤 했는데, 역시 이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대학원 지도교수라거나 진학 지도 상담과 같이 그 사람의 인생에 많은 가르침과 영향을 주는 선생의 자리는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고 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삶을 이끄는 일이 아닌가.

이런 면에서 현재 나의 위치와 능력은 어떻는지 생각해 보는데, 자신 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기야 죽는 순간까지 삶을 관통하며 갈고 닦아야 할 것이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생각할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post-doc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부족하던 학문적 소양은 그다지 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논문 꾸미는 능력이 좀 는 거 같기는 하고, 또 논문의 영어를 썩 괜찮은 수준으로 고쳐주지는 못해도 논문 투고에 심히 부적합할만큼 엉망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는 거 같다. 비단 이런 것이 아니어도 발표 능력, 대인 관계 등 가르치고, 또 때론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역시 가르치는 직업은 함부로 보고 쉽게 뛰어들 바닥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좋지 못한 선생상'이 나 자신에게 투영되어 버리면 곤란하지 않은가.

만약 자신이 없다면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직업이 가르치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남에게 심하게, 아주 크게 민폐 끼치는 거다. 역시 뭐가 나에게 잘 맞고, 나의 능력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지, 남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고 사회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지, 계속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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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방문자 | 2007/12/13 12: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호수마음 | 2007/12/13 00:45 | PERMALINK | EDIT/DEL

      사랑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거잖아...

  • 페가 | 2007/12/13 05: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이 부분이 크게 부담이 됩니다.
    저도 할 수만 있다면 교수를 하고 싶은데,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이전에 이 한몸 추스리기 힘드니;

    • 호수마음 | 2007/12/13 06:10 | PERMALINK | EDIT/DEL

      사실 우리는 공부한다고 해서 추스려질 몸이 아니긴 하잖습니까. 살부터 빼야죠.

  • 이재승 | 2007/12/13 08: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포닥 기간에 뭘 하느냐를 생각해 보면, 박사 기르는거랑 별 상관 없어 보이는데? 포닥이 뭔지도 모르는 분야도 많은데.

    • 호수마음 | 2007/12/13 13:42 | PERMALINK | EDIT/DEL

      뭐, 어떻게 연구하고 사는지 조금 더 배우긴 하잖아요...

  • 명랑아짐 | 2008/01/26 04: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랑은 살짝 반대? -.-;;
    선생으로서의 삶은 익사이팅하고 기대가 되지만
    역시 교수란.. 공부하고 연구하고. 연구를 리드해나가면서 학생들을 이끌어야 하는 직업.
    이것 때문에 외려 주춤거린다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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