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에 해당되는 글 6건 |
||
안방마님 :: 2007/03/29 03:56/과학기술
미국 프로야구 팀 중 최고의 앙숙은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다. 사실 전세계 프로스포츠계의 최고 앙숙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거 같다. 라이벌답게 이 두 팀은 올시즌 초부터 지구 1, 2위를 다투고 있는데 계속 보스턴이 1위를 달리고 양키스가 그 뒤를 쫓아왔었다. 그런데 8월 들어 양키스가 1위로 올라섰고 레드삭스는 침체에 빠졌다. 특히 지난 주말에 있었던 5연전이 압권이었는데, 예전에 우천으로 순연된 경기까지 포함해서 4일 동안 보스턴에서 다섯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 1위 양키스와 레드삭스의 게임차는 불과 1.5게임이었다. 그러나 보스턴은 이 모든 경기를 양키스에게 내주며 6게임 반차로 격차가 벌어져 지구 1위는 거의 힘든 상황이 된 거 같다. 거기다가 어제는 곧바로 있었던 LA Angels와의 경기에서도 지고 말아 6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양키스와의 라이벌전이라서 특별히 분발했음에도 5연패를 하고 만 것이 최근 레드삭스의 부진과 관계가 깊은데, 보스턴의 8월 성적이 아주 좋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이 주전 포수 Varitek의 결장이라고 생각된다. 7월 31일 이후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그 뒤로 레드삭스는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특히 불펜투수들의 방화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흔히 포수를 안방마님이라고 부르는데, 원래의 역할에 비해 대중들의 관심은 크게 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포수는 단지 투수가 던져주는 공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투수의 볼배합을 리드하고 수비위치를 조정하는 등 작전본부에 있는 감독을 대신한 야전사령관의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다. 그리고 포수는 동네야구에서 해 봐서 알지만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그래서 대개 포수들의 타격은 썩 훌륭하지 못하고, 마운드 위에 우뚝 서서 쉼없이 공을 뿌려대는 투수나 엄청난 비거리의 홈런을 쳐대는 강타자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주전포수의 결장은 지구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던 보스턴 레드삭스를 수모의 현장으로 이끌 만큼 치명적인 것이고, 대개 이쯤 되어서야 비로소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새삼 포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야구 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곳에서 이런 안방마님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 조직이 실적을 이루어 내었을 때 실제 뒤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과실도 별로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어수룩해서일 수도 있고 조직을 이끄는 사람의 잘못일 수도 있다. 혹은 조직의 생리상 회사가 일구어낸 업적은 모두 신임사장의 공으로 신문의 인물 인터뷰 란을 장식하기도 한다. 어쩌면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에서 조직을 이루고 함께 힘을 모아 성과를 이루는 것에 누구 하나의 독보적인 치적을 칭찬하기 힘들지도 모르고, 어쩌면 애시당초 각자의 기여를 셈한다는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조직이 계속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에게도 과실을 충분히 주어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리더가 갖추어야 할 능력일 것이며,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과 도리가 아닐까 한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수시로 놀라운 연구성과들이 발표되는데 대개 이 때 주목을 받는 것은 해당 연구팀의 교수이거나 책임을 맡고 있는 고참 연구원들이다. OOO 교수가 새로운 물질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그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것이다. 가끔 연구팀이라는 명칭을 쓰는 기자들이 있긴 하다. 그래도 아직 대부분의 보도에서는 수많은 일선의 연구원들이 모조리 무시되기 쉽상이다. 아이디어를 함께 다듬고 연구방향을 설정하고 진행과정을 채찍질하는 교수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선 연구원들은 9이닝의 경기 시간 내내 쪼그리고 앉아서 힘들게 공을 받아내고 있는 포수일지도 모른다. 황우석 전 교수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져준 것들이 참 많은데, 어쩌면 교수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인력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핵심적인 연구의 상당 부분이 교수가 아니라 이들 연구원, 대학원생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된 것도 하나의 과실일지 모른다. 조직의 아래부터 차근차근 경험하며 조직의 생리와 관리 방법을 교육을 통해 혹은 몸소 겪으며 성장한 회사나 연구소의 경영인과는 달리 대학 연구실의 교수는 처음부터 해당 연구실의 최고관리책임자였으며, 교수들에게 조직 관리 등에 관한 재교육을 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구실 운영은 교수의 타고난 개인 성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학생들의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는 경우가 잘 없다. 심한 경우 논문 저자 순서 빼앗기고, 인건비를 제대로 못 받는 것을 넘어서서 교수 개인의 주머니를 채우는데 이용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야구 선수처럼 부상당했다고 잠시 경기를 쉴 수도 없고, 거액의 돈을 받고 다른 연구실로 트레이드 되기도 힘든 연구현장의 안방마님들이 억만금의 대가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니다. 적절한 대우를 받고 연구에 보람을 느끼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안방마님들이 더이상 못 견디고 떠나버리면 레드삭스처럼 최악의 연패 수렁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4
|
||
기술유출이라는 마녀사냥 :: 2007/03/29 03:55/과학기술
최근 엄청난 가치를 가진 기술을 빼내려는 몰염치한 연구 인력의 시도를 사전에 적발하였다는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해외에 유출할 첨단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기쁜 일일 수도 있고, 자칫 엄청난 국부유출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일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박수 받아 마땅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술유출 사건을 한 꺼풀 벗겨보면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기술수출국이기보다는 해외의 선진 기술을 들여와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섣부른 기술유출보호정책은 다른 나라와의 마찰을 불러오거나 도리어 국내 기술 발전을 막을 가능성이 있다거나, 본래 기술은 교류를 통해 발전하며 기술유출방지대책이 기술개발체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도 기술유출 사례는 조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장비기술을 유출시켰다며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한 사건이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들이 그렇듯이 발생 당시에는 신문의 1면을 화려하게 장식하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는 세상의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현실에서 과학기술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성장동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잘못된 기술유출방지대책이나 언론, 사회의 반응은 이런 성장동력을 크게 해치는 또 다른 동력이 된다. 기술유출과 관련된 보도가 나오면 과학기술인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모임 등에는 해당 기술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곤 한다. 근데 대부분이 첨단기술이기보다는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기술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결론이 나올 때가 많다. 대개 회사는 연구인력의 이직을 막기 위해 일단 기술유출이라는 혐의를 씌워 수사를 의뢰하고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기소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세부적인 기술 현황을 자세히 알기 힘든 검찰과 언론, 국민들은 엄청난 투자비가 들어가고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를 가진 최첨단 기술이라는 기업의 주장을 특별한 검증절차 없이 받아들이기 쉬우며, 이 과정에서 해당 연구인력은 국민과 역사 앞의 중죄인이 되고 만다. 사실 최근의 기술유출과 관련된 고소는 실제 기술유출이기 보다는 연구원의 전직을 막기 위해 일단 고소를 통해 공권력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설령 재판과정에서 무죄 판결이 난다 하더라도 해당 인력은 다른 회사로의 전직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한 최소한 몇 달은 연구의 공백이 생기기 마련인데, 날로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전쟁의 시대에서 이 정도의 공백은 완전히 무장해제를 하고 전쟁터를 떠나야 할 수 밖에 없는 긴 시간이다. 이것은 올바른 대우를 해주기보다는 제도라는 이름으로 족쇄를 채워놓으려는 노동 탄압적인 측면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과학기술인의 연구인생을 짓밟아놓는 인권탄압이 아닐 수 없다. 과학기술인들은 아직도 외환위기 당시 제일 먼저 회사 밖으로 내몰렸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 문제 또한 이때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올바른 대우를 받지 못해도 열심히 국부를 창출한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사회가 보여준 모습은 너무나도 냉대했다. 사실 과학기술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가치이다. 정치, 경제, 행정 체계 등은 각 나라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따라서 특정 국가의 경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휴대폰 기술에 큰 차이가 있을 수는 없다. 바꿔 말하면 과학기술인력은 외국에 가서도 본인의 특기를 잘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회사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자칫 잘못하면 범죄자로 몰리기 쉬운 우리 사회를 떠나 외국 기업, 해외 이주를 결심하는 과학기술인이 느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부유출이 아니겠는가. 과학기술인이 기술유출방지대책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창작물이 도둑맞는다는 것은 단지 금전적인 손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이 담긴, 혼이 담긴 결과를 빼앗기는 것은 과학기술인의 삶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과학기술인들의 우려는 너무나도 친기업적인 기술유출방지와 관련된 사회의 움직임이다. 제대로 과학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수사 인력을 양성한다거나 기술개발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통해 회사와 인력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등의 긍정적 전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는 기업과 언론의 과장된 피해액 산출에 휩쓸려 과학기술인들에게 부당한 족쇄를 채우고, 연구현장을 떠나게 만들고 이들 인력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사냥터가 되어 가는 거 같아서 안타깝다. 진정 과학기술이 이 나라의 성장동력이 맞기는 한 것인가.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3
|
||
젊은 과학도의 반성 (중앙일보 2006년 1월 2일) :: 2007/03/29 03:54/과학기술
최근 황우석 교수 연구팀은 과학기술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문을 한꺼번에 두 개나 열어버렸다. 바로 연구 윤리 위반과 논문 조작이다. 윤리와 진실을 저버린 이들의 학자적 생명은 회복 불가능의 치명상을 입었으며, 과학기술계와 대한민국의 신뢰 또한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국민이 입은 상처는 그 무엇보다도 큰 손실이며, 과학기술계는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기는커녕 실망과 배신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국민에게 가슴깊이 사죄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황우석 신드롬'에 취해 있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열풍에 휩싸였던 것처럼 말이다. 몇 년 전부터 회자되는 이공계 기피 문제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큰 위기다. 하지만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불안해하고 있던 찰나에 터져 나온 '황우석 신드롬'은 국민에게 월드컵 이상의 희열과 희망을 갖게 했으며, 많은 과학기술인은 이로 인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물론 그것이 과학기술인들에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으며, 이것 역시 과학기술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 사건은 역사의 부끄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하지만 혹자는 이번 파문이 해외가 아닌 국내의, 특히 젊은 과학기술인들의 손에 의해 밝혀졌다는 점에서 희망을 찾기도 한다. 그렇다고 젊은 과학자를 제외한 과학기술인들이 조작의 문화에 익숙하며, 연구 윤리는 내동댕이쳐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과학의 발전은 기존의 이론과 법칙에 의문을 갖고 보완하며 때로는 부정하는 가운데 이뤄지기에 모든 논문은 과학기술계 내부의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되고, 거짓은 언젠가 밝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길이 험난한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없었더라면 이번 파문도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을지 모른다. 필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 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며 부정부패 혹은 구조적 모순의 사례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무척 힘들었던 경험이 많다. 그 어떤 분야보다도 내부 고발자에 대한 처벌이 혹독한 곳이 과학기술계다. 단지 한 기관에서의 퇴출이 아니라 관련 학계에서의 영원한 추방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뜻 총대를 멘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더군다나 대학원생이라도 이미 학생이기보다 연구원.학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젊음과 열정이라는 카드가 통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지금 드러난 문제점은 단지 논문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체계 구축이나 윤리 의식 강화만을 통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부실이 아니다. 현장의 과학기술인이라면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현장의 문제점이 제대로 사회에 전달되지 못했던 것은 우리 스스로의 참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용기를 내어볼 만하지 않은가. 연구과제의 합리적인 기획과 투명한 선정, 정확한 성과 평가, 비정규직 연구원과 대학원생을 비롯한 과학기술인에 대한 적절한 대우, 제대로 된 국가혁신체계 구축 등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줄기세포 논문의 의문점처럼 과학기술인들이 주도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인들이여. 이제 관심의 초점을 한두 개의 논문 오류에서 전체적인 과학기술 시스템으로 옮겨보자.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과감히 펼치고 함께 고민해 보자.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이번 논란의 본질적인 문제는 잊혀지고 말 것이다. 과학기술계의 당당한 혁신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지금의 고통을 잊지 말고 부지런히 나아가자. 우리에게는 분명 희망이 있지 않은가.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2
|
||
기본을 사수하라 :: 2007/03/29 03:50/과학기술
‘모든 것을 최대한 단순화하라. 하지만 더 단순화하지 마라. (Everything should be as simple as possible, but no simpler)’
얼핏 보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올해는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 상대성이론이 발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로, 세계가 ‘2005 세계 물리의 해’를 기념하고 있다. 단지 물리학계뿐만 아니라 인류 세계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천재가 남긴, 이 알 수 없는 말의 진의는 무엇일까. 물리학이란 기본적으로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자연은 미물인 인간이 접근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거대한 존재인지라, 물리학의 영역에서는 실제의 자연을 단순화시키고 많은 부분을 생략하여 모델을 개발하고 법칙을 세운다. 따라서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라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는 물리학자들이 언제나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단순화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 낸 성과들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정확한 이론으로 달나라에 로켓을 보내기도 하고, 최첨단 IT 혁명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가장 근본이 될만한 특징마저 단순화하고 생략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단순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을 미처 찾지 못했거나 잊어버렸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실수이다. 즉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마저도 망각해 버린 것이다. 이공계 출신의 인재들은 대부분 연구개발 현장에 종사한다. 이러한 현상이 지금의 이공계 위기를 불러왔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개발 현장을 잘 모르는 정책 입안자들이 과학기술 정책을 다루고, 기술을 모르는 경영인이 기업의 경영을 이끌었기에 과학기술인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고 지금의 위기가 찾아왔으니 과학기술인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지 않는 과학기술인들이 과학기술을 대중과 분리시켜 소수만이 점유할 수 있는 어려운 학문으로 만들었고, 국민들의 과학기술 마인드가 부족하여 이공계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이공계 출신이라고 하여 그 역량을 연구개발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의학, 법학, 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키는 것이 전체적인 국가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라고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자칫하면 기본을 망각해 버리기 쉬운 단순화의 과정이다. 과학기술의 기본은 현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현장은 굉장히 좁은 영역의, 첨단 과학기술만을 다루는 연구개발 현장이 아니다. 연구개발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제품을 만드는 것 또한 과학기술의 현장이며, 이공계 인력의 고유 영역에 속한다. 이공계 문제의 해법은 소수의 천재가 호의호식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현장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대부분의 이공계 인력이 제대로 대우받고 편안하게 자기 업무에 종사할 수 있을 때 이공계 문제 해결이라는 터널의 종점이 있는 것이다. 최근 일부의 움직임을 보면 과학기술인이 단지 연구개발 현장에만 머무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일로 치부하고, 의학․법학 전문대학원을 비롯하여 공무원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이 이공계 문제 해결의 핵심이며 개인의 성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해당 분야에 재능과 관심이 있는 과학기술인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력이 타 분야로 진출한다면, 이것은 이공계를 벗어나려는 대탈출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마저 잊어버린 단순화는 작위적이고 잘못된 결과를 불러온다. 일순간 제대로 된 모델과 법칙을 세운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조그마한 응용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쉬운, 모래성 법칙을 불러올 뿐이다. 기본을 잊지 말자. 올해를 세계 물리의 해로 만든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남기는 이공계 문제 해결의 가이드라인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0
|
||
과학기술이 경제의 '기초'다. (한겨레 2004년 5월 31일) :: 2007/03/29 03:47/과학기술
이번 주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은 2주째 ‘블랙 먼데이’를 연출했다. 소위 삼재(三災)라 할 수 있는 유가 급등,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 중국의 긴축정책의 폭탄에 세계 증시가 불안한 가운데 우리 주식시장도 폭풍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얼마 전만 해도 주식시장은 종합주가지수 1,000시대의 재개막을 노렸고,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점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광에서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97년의 외환위기를 겪은 국민들은 작은 경제 적신호에도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최근의 상황은 그렇지 않아도 살얼음판의 경제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주기 충분하다. 특히 그동안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 주던 수출 시장이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긴축정책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 노사 문제를 비롯한 내부 갈등 요소도 앞길이 밝지만은 않다. 이런 경제 위기의 원인은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 열풍, 과다한 비정규직 문제, 기업경영의 불투명성에서부터 주식시장의 기초체력 부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부족 등. 각자 제각각의 원인과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신용카드 등 금융 부실과 신용불량자 문제도 해결해야 하며, 청년 실업 문제도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이렇듯 우리 경제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매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97년 외화위기 직전 정부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기초경제여건)은 튼튼하기 때문에 걱정 없다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지금도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경제의 기초를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중요한 펀더멘털 하나가 빠진 채 위기 탈출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바로 과학기술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1,600억 달러가 넘는다. 경상수지도 흑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으니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외환보유고가 지금의 수십배가 된다 한들 진정한 펀더멘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외환보유고는 홍수에 무너진 둑을 응급복구하기 위해 비축해둔 모래주머니에 지나지 않는다. 외환위기 직후 우리 경제는 잠시 고공 흑자 행진을 펼쳤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 회복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세계 일류기업이라고 손꼽히는 삼성전자의 위상은 대단하다. 그러나 아직 미국, 일본의 유수 전자 산업체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원천기술이다. 이런 원천기술이야말로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쌓는 법을 연구하는 것이며, 기상 예측 능력을 배양하여 미리 홍수에 대비할 수 있게 만드는 비책이다. 비단 원천기술 뿐 아니라 생산․공정 기술을 비롯한 전반적인 과학기술 능력 향상이야말로 경제의 펀더멘털이 아닐까 한다. 물론 과학기술이 경제의 모든 주춧돌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금융 시스템을 확립하고 다양한 방면의 인재를 양성하여 이들을 적극 활용하는 등, 모든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펀더멘털일 것이다. 다만 이런 펀더멘털 중에서 인재 양성과 더불어 긴 안목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며, 보다 근본적인 경쟁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이 과학기술이지 않을까 한다. 지난 외환위기 당시 각 기업체들은 연구개발인력을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렇게 거리로 쏟아져 나온 과학기술인을 보며 서서히 이공계 기피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공계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당장 1,600억 달러로 외환위기를 막고, 자본을 유치하여 경기를 부양한다 해도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면 건강한 펀더멘털은 없다. 단지 튼튼해 보이고 일류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을 불러올 뿐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8
|
||
엘리트 체육과 과학기술 :: 2007/03/29 03:36/과학기술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국내에 국제규격의 경기장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는 남자 하키 팀이 기적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지난 2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는 공식 등록 선수가 8명뿐인 스키 점프가 2개의 금메달을 따내었습니다.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을 딛고 훌륭한 성과를 거둔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지난 2002년 우리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아직 제대로 된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운동장이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무더기로 안겨주는 효자 종목을 직접 경험한 국민들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대한민국 이 지금까지 여러 국제 대회에서 거둔 성과는 세계가 깜짝 놀랄만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엘리트 체육이 일구어 낸 성과입니다. 우리의 체육 행정은 그동안 엘리트 스포츠 위주의 ‘보는 스포츠’였으며 단지 올림픽의 메달 수로 평가받아왔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볼 수만 있고 할 줄은 모르는 반쪽짜리 스포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체 수명은 선진국이지만 건강수명은 후진국이라고 합니다. 스포츠라는 것은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의 근간을 제공해 건전한 사회의 바탕을 이루어야 합니다. 선진국과 비교하여 체육 시설 및 국민들의 참여도는 20-30배씩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체육은 세계에서 경제 규모보다도 수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제 일부가 ‘하는 스포츠’, 전 국민이 ‘보는 스포츠’의 엘리트 체육에서 모두가 ‘함께 하는’ 생활 체육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물론 정당의 목적이 정권 창출인 것처럼 체육회의 목표는 승리라는 체육인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했습니다. 이제는 삶의 질을 향상할 시기가 아닐는지요. 과학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기술계는 반도체, 이동통신 등 경제의 효자 상품들을 개발하여 국익에 어마어마한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공계 기피라는 철저한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을 딛고 훌륭한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남자 하키 선수, 스키 점프 선수들이 과학기술계에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 박수를 받아야 하는 이들입니까? 우리는 세계 12위의 경제 신화를 이루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 전 국민의 일치단결을 통하여 얻어낸 성과입니다. 그러나 최근 경제 성장의 주요 엔진이었던 과학기술계가 좌초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역시 ‘엘리트 과학기술’이 기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 국민이 ‘과학 하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생활체육에서 엘리트가 탄생하듯 대한민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탄생하고 첨단 기술도 개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변의 환경이 미비하여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온 국민이 과학기술을 알고 싶어도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흔히들 과학기술은 어렵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축구공만 있으면 모두 축구경기 할 수 있듯이 과학기술도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TV에서 과학기술을 재밌게 풀어주는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입니다. 비록 금메달을 따지 못해도 즐겁게 뛸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입니다. 노벨상을 타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호기심을 가진다면 바로 과학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며 온 국민이 과학기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온 국민이 스포츠와 함께 하여 올림픽 1위, 월드컵 1위를 차지할 때 우리는 진정한 스포츠 강국이 될 것입니다. 온 국민이 과학 하는 마음으로 노력할 때 우리는 진정한 과학기술입국(科學技術立國)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wsjung.net/trackback/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