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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마님 :: 2007/03/29 03:56

미국 프로야구 팀 중 최고의 앙숙은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다. 사실 전세계 프로스포츠계의 최고 앙숙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거 같다. 라이벌답게 이 두 팀은 올시즌 초부터 지구 1, 2위를 다투고 있는데 계속 보스턴이 1위를 달리고 양키스가 그 뒤를 쫓아왔었다. 그런데 8월 들어 양키스가 1위로 올라섰고 레드삭스는 침체에 빠졌다. 특히 지난 주말에 있었던 5연전이 압권이었는데, 예전에 우천으로 순연된 경기까지 포함해서 4일 동안 보스턴에서 다섯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 1위 양키스와 레드삭스의 게임차는 불과 1.5게임이었다. 그러나 보스턴은 이 모든 경기를 양키스에게 내주며 6게임 반차로 격차가 벌어져 지구 1위는 거의 힘든 상황이 된 거 같다. 거기다가 어제는 곧바로 있었던 LA Angels와의 경기에서도 지고 말아 6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양키스와의 라이벌전이라서 특별히 분발했음에도 5연패를 하고 만 것이 최근 레드삭스의 부진과 관계가 깊은데, 보스턴의 8월 성적이 아주 좋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이 주전 포수 Varitek의 결장이라고 생각된다. 7월 31일 이후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그 뒤로 레드삭스는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특히 불펜투수들의 방화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흔히 포수를 안방마님이라고 부르는데, 원래의 역할에 비해 대중들의 관심은 크게 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포수는 단지 투수가 던져주는 공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투수의 볼배합을 리드하고 수비위치를 조정하는 등 작전본부에 있는 감독을 대신한 야전사령관의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다. 그리고 포수는 동네야구에서 해 봐서 알지만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그래서 대개 포수들의 타격은 썩 훌륭하지 못하고, 마운드 위에 우뚝 서서 쉼없이 공을 뿌려대는 투수나 엄청난 비거리의 홈런을 쳐대는 강타자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주전포수의 결장은 지구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던 보스턴 레드삭스를 수모의 현장으로 이끌 만큼 치명적인 것이고, 대개 이쯤 되어서야 비로소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새삼 포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야구 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곳에서 이런 안방마님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 조직이 실적을 이루어 내었을 때 실제 뒤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과실도 별로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어수룩해서일 수도 있고 조직을 이끄는 사람의 잘못일 수도 있다. 혹은 조직의 생리상 회사가 일구어낸 업적은 모두 신임사장의 공으로 신문의 인물 인터뷰 란을 장식하기도 한다. 어쩌면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에서 조직을 이루고 함께 힘을 모아 성과를 이루는 것에 누구 하나의 독보적인 치적을 칭찬하기 힘들지도 모르고, 어쩌면 애시당초 각자의 기여를 셈한다는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조직이 계속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에게도 과실을 충분히 주어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리더가 갖추어야 할 능력일 것이며,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과 도리가 아닐까 한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수시로 놀라운 연구성과들이 발표되는데 대개 이 때 주목을 받는 것은 해당 연구팀의 교수이거나 책임을 맡고 있는 고참 연구원들이다. OOO 교수가 새로운 물질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그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것이다. 가끔 연구팀이라는 명칭을 쓰는 기자들이 있긴 하다. 그래도 아직 대부분의 보도에서는 수많은 일선의 연구원들이 모조리 무시되기 쉽상이다. 아이디어를 함께 다듬고 연구방향을 설정하고 진행과정을 채찍질하는 교수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선 연구원들은 9이닝의 경기 시간 내내 쪼그리고 앉아서 힘들게 공을 받아내고 있는 포수일지도 모른다. 황우석 전 교수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져준 것들이 참 많은데, 어쩌면 교수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인력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핵심적인 연구의 상당 부분이 교수가 아니라 이들 연구원, 대학원생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된 것도 하나의 과실일지 모른다.

조직의 아래부터 차근차근 경험하며 조직의 생리와 관리 방법을 교육을 통해 혹은 몸소 겪으며 성장한 회사나 연구소의 경영인과는 달리 대학 연구실의 교수는 처음부터 해당 연구실의 최고관리책임자였으며, 교수들에게 조직 관리 등에 관한 재교육을 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구실 운영은 교수의 타고난 개인 성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학생들의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는 경우가 잘 없다. 심한 경우 논문 저자 순서 빼앗기고, 인건비를 제대로 못 받는 것을 넘어서서 교수 개인의 주머니를 채우는데 이용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야구 선수처럼 부상당했다고 잠시 경기를 쉴 수도 없고, 거액의 돈을 받고 다른 연구실로 트레이드 되기도 힘든 연구현장의 안방마님들이 억만금의 대가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니다. 적절한 대우를 받고 연구에 보람을 느끼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안방마님들이 더이상 못 견디고 떠나버리면 레드삭스처럼 최악의 연패 수렁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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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하기 쉬운 과학문화활동의 오류 :: 2007/03/29 03:52

과학기술은 어려운 것인가? 그렇다. 과학기술은 어려운 것이다. 굳이 수식이 난무하는 머리 아픈 과학기술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들의 깊이는 오랜 인류의 역사, 학문 탐구의 역사만큼 깊다. 단지 수학을 이해하지 못해서 과학기술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수학이 없는 학문도 그 깊이를 모두 드러내면 어렵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대중들은 특히 과학기술이라는 학문을 어렵다고 느끼는 것일까? 가끔 과학기술인의 대중 강연을 들어보면, 연구실에서 펼쳐지는 세미나 시간에 적합한 자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한 때가 있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평생을 바쳐서 탐구해 온 결과물을 단시간 내에 대중, 특히 과학기술과 거리를 두고 살아온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강연자로 나선 과학기술인의 과학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과학기술인에 대한 과학문화 관련 교육을 강화하면 해결될 문제인가? 아니면 다른 학문과는 달리 과학기술은 애당초 쉽게 풀어쓸 수 없기 때문일까?

막연하게 많은 이들이 대중이 과학기술을 이해하여야 그들이 과학기술인의 역할을 인식하고 연구개발활동의 위상을 높이 평가함은 물론 국가의 과학기술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문화활동은 비단 과학기술인을 위하거나 국가경쟁력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학창시절을 통해 당장 나의 직업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학문들을 공부해 왔다. 사회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최소한의 교양일 수도 있고, 알아두면 두루 편한 지식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과학기술 또한 이런 교양과 기초지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이 모두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점에 가보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할 수 있다. 문학작품에서부터 학생들의 참고서까지. 그리고 마치 5일장에 온 것처럼 잘 팔리고 관심 있는 분야의 책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지만, 별로 인기 없는 코너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주로 서점이라는 시장에서 잘 팔리는 분야는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참고서와 문학작품, 그리고 먹고사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제, 경영의 큰 분류에 해당하는 책들이다. 최근에는 외국어, 레저 관련 책들도 잘 나가는 부류에 속할 것이다. 시장의 자생적 기능은 매우 뛰어나, 시장의 주체들이 스스로 필요하고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에 억지로 투자하도록 누군가가 강요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실 이런 시장의 절대자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과학문화활동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시민들이 매일 뉴스에 나오는 주식시세표와 환율, 금리 등의 복잡한 얼개를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는 정보이며 관심을 가지고 자꾸 보다 보니 어느새 경제상식이 부쩍 늘어있음을 보게 된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다. 경제상식처럼 삶에 보탬이 된다면 왜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는가.

과학문화활동의 기본은 과학기술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알리는 것이다.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데 어찌 배우지 아니하겠는가.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대개 나오는 이야기는, 신기술이 경제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쳤다거나 새로 개발한 기술에 대한 법칙과 설명을 늘어놓기 쉽다. 이것은 과학기술의 본질도 아니며, 어려운 과학기술을 대중과 더 유리시킬 뿐이다. 어린 아이들이 참여하는 천문캠프, 실험교실 등에서 보여주는 학생들의 관심도는 굉장히 높다. 과학기술을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지적 활동은 비단 과학기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것이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대개 신기술의 놀라운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주거나,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승리에 감동의 눈물과 박수를 보내도록 하는 것들이 많다. 이런 과학문화활동은 도리어 ‘어려운 기술은 과학기술인에게’ 라는 마인드를 국민에게 심어주지 않을까? 저 기술이 놀라우니 나도 저런 것을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들리는 만무하다. 과학의 대중화는 현존하는 과학원리를 대중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분야에서 바라보는 탐구의 정신과 시각을 대중화하는 것이다. 이런 기초들이 쌓여서 과학문화의 금자탑을 쌓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학(science)이라는 단어의 뿌리가 ‘안다’라는 라틴어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모든 과학기술인이 과학문화활동의 최전선에 뛰어들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연구개발현장에서 일하는 과학기술인의 기본은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이다. 거기에 부가적으로 사회봉사활동도 할 수 있고, 과학문화활동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지나치게 현장의 인력들이 과학문화활동의 전방에 뛰어들라고 강요한다면, 과학기술계의 근본 경쟁력을 해칠 수도 있다. 다만 연구성과를 널리 알리는 것을 비롯하여 온국민에게 과학기술 마인드가 확산되는 것이 비단 학문의 고립화를 막을 뿐 아니라 연구개발인력 스스로에게도 보탬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는 있다. 그리고 만약 최전선에 뛰어들지 못한다면 보급을 담당하는 병참의 역할이라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쟁은 최전방의 전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과학문화 컨텐츠를 생산하고, 심정적, 금전적 지원을 보낼 수도 있다. 과학문화활동이 재미있고 관련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보다 과학문화활동에 매진하도록 하고,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은 사람에게 활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적성에 맞지 않은 사람이 나선 일선활동은 자칫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우리의 과학문화활동은 부실건축물이 아니라 튼튼한 기초를 가진 인텔리전트 빌딩이 되기를 소망한다. 과학기술관련 서적과 홈페이지 양산, 학생들을 청중으로 동원하는 대중 강연회 개최 등은 손쉽게 준비하여 과학문화활동의 성과물로 내놓기에 적합할지 몰라도 이것이 과학문화활동의 전부도 아니며 중요한 부분도 아니다. 활동의 방법론을 찾아 좌판을 먼저 벌이기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팔아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단골로 잡아둘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당장의 판매실적만을 논하기에는 과학문화활동이 가지는 중요함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http://www.sciencetimes.co.kr/data/article/11000/0000010213.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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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을 사수하라 :: 2007/03/29 03:50

‘모든 것을 최대한 단순화하라. 하지만 더 단순화하지 마라. (Everything should be as simple as possible, but no simpler)’

얼핏 보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올해는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 상대성이론이 발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로, 세계가 ‘2005 세계 물리의 해’를 기념하고 있다. 단지 물리학계뿐만 아니라 인류 세계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천재가 남긴, 이 알 수 없는 말의 진의는 무엇일까.

물리학이란 기본적으로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자연은 미물인 인간이 접근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거대한 존재인지라, 물리학의 영역에서는 실제의 자연을 단순화시키고 많은 부분을 생략하여 모델을 개발하고 법칙을 세운다. 따라서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라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는 물리학자들이 언제나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단순화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 낸 성과들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정확한 이론으로 달나라에 로켓을 보내기도 하고, 최첨단 IT 혁명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가장 근본이 될만한 특징마저 단순화하고 생략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단순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을 미처 찾지 못했거나 잊어버렸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실수이다. 즉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마저도 망각해 버린 것이다.

이공계 출신의 인재들은 대부분 연구개발 현장에 종사한다. 이러한 현상이 지금의 이공계 위기를 불러왔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개발 현장을 잘 모르는 정책 입안자들이 과학기술 정책을 다루고, 기술을 모르는 경영인이 기업의 경영을 이끌었기에 과학기술인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고 지금의 위기가 찾아왔으니 과학기술인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지 않는 과학기술인들이 과학기술을 대중과 분리시켜 소수만이 점유할 수 있는 어려운 학문으로 만들었고, 국민들의 과학기술 마인드가 부족하여 이공계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이공계 출신이라고 하여 그 역량을 연구개발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의학, 법학, 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키는 것이 전체적인 국가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라고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자칫하면 기본을 망각해 버리기 쉬운 단순화의 과정이다.

과학기술의 기본은 현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현장은 굉장히 좁은 영역의, 첨단 과학기술만을 다루는 연구개발 현장이 아니다. 연구개발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제품을 만드는 것 또한 과학기술의 현장이며, 이공계 인력의 고유 영역에 속한다. 이공계 문제의 해법은 소수의 천재가 호의호식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현장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대부분의 이공계 인력이 제대로 대우받고 편안하게 자기 업무에 종사할 수 있을 때 이공계 문제 해결이라는 터널의 종점이 있는 것이다.

최근 일부의 움직임을 보면 과학기술인이 단지 연구개발 현장에만 머무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일로 치부하고, 의학․법학 전문대학원을 비롯하여 공무원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이 이공계 문제 해결의 핵심이며 개인의 성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해당 분야에 재능과 관심이 있는 과학기술인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력이 타 분야로 진출한다면, 이것은 이공계를 벗어나려는 대탈출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마저 잊어버린 단순화는 작위적이고 잘못된 결과를 불러온다. 일순간 제대로 된 모델과 법칙을 세운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조그마한 응용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쉬운, 모래성 법칙을 불러올 뿐이다. 기본을 잊지 말자. 올해를 세계 물리의 해로 만든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남기는 이공계 문제 해결의 가이드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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