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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학생의 이중적 위상 :: 2007/03/29 03:41

이공계 학생은 학생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과학기술 연구는 산․학․연, 세 주체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학계의 연구는 학생들의 손에 의해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지도교수나 기타 지원인력 없이 학생들만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 연구소의 연구 주체는 대표이사가 아니라 현장 연구원이며, 연구소도 마찬가지다. 이공계 학생이라는 신분은 상당히 모호하다. 우리의 정서상 사제지간의 관계는 어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스승은 가르치는 사람, 제자는 배우는 사람의 위치에 서 있다. 이로 인하여 상당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경직되어 있다. 물론 학생은 기본적으로 배우려는 사람이며, 그러기 위해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교수와 함께 연구팀을 이루어 여러 연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반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동반자라는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 경직된 관계의 대부분은 이런 동반자라는 인식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부분의 과학기술인들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크다. 그러나 이는 과학기술인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측면이 있다. 과학기술인들이 사회에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에 걸맞는 이해할 만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인데, 대학원 학생들은 부가가치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 현재 KAIST 대학원 학생들이 연구 과제를 수행하여 평균적으로 받는 수당이 연 600만원에 불과하다. 연봉 수준으로 놓고 본다면 KAIST가 발표하는 연구 성과는 대단히 부실해야 하지만, 훌륭한 성과들이 언론 지상에 많이 보도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납득하지 못할 대우가 아닌가. 우리 나라의 이공계 대학원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연구에 쏟고 있는가. 본격적인 연구 생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원 시절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이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사고로 이어져 과학기술인 스스로 자신들의 가치를 낮추는 결과를 불러온다. 과학기술계가 사회로부터 적절한 대우를 받기 원한다면 과학기술인 스스로 먼저 적절한 보상을 해 줘야 한다.

학생들의 보상이 턱없이 낮은데에는 이공계 학생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서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배움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고, 교육 서비스를 받는 것이 학생이다. 물론 그런 배움을 위해서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대학원을 거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교육을 위한 연구’가 이루어지며, 이 연구가 사회적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대학원 학생들이 이루어내는 직무발명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익을 학교에 안겨줄 수 있다. 이들이 단지 학생일 뿐이란 말인가.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면 본격적인 직업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물론 대학에서 이루어진 ‘교육을 위한 연구’의 연장 과정이다. 즉 다시 말해 일의 성격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학생이라는 신분이 연구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신분은 허구에 불과하다. 과학기술 연구라는 것은 끝이 없다. 평생을 연구해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이 과학기술이다.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면 연구원들의 연구와 학생들의 연구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여기에서 이공계 학생들의 이중적 위상이 시작된다. 그들은 과학기술을 공부하는 학생이지만 연구원이다. 마찬가지로 연구원들도 연구원인 동시에 과학기술을 공부하는 학생인 것이다.

우리의 대학은 교수가 지도학생을 받아들이는데 들여야 하는 투자의 필요성이 거의 없다. 별 대가없이 사용할 수 있는 학생 연구 인력은 전반적인 대학 연구 역량의 약화를 불러온다. 학생을 받기 위해 교수들이 노력하는 과정이 바로 대학 연구 역량을 강화시키는 과정이다. 보다 나은 연구 실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보다 존경받는 스승이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이 보다 우수한 학생을 끌어들일 수 있고, 이 과정이 선순환되어 대학 연구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별 노력없이도 실질적 연구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면 그로부터 별 노력없이 연구성과가 학생들로부터 나오게 되며, 이로 인해 전체 연구 역량 개발을 게을리 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된다. 이로 인해 국내 대학의 수준이 점차 떨어지게 되고, 열악한 대우에 더해 학생들을 해외로 내쫓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의 주요 현상 중 하나인 우수 인력 유출도 바로 과학기술계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대단히 안타까운 사고가 KAIST에서 있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는 엄청난 재해들을 겪어왔다. 성수대교 붕괴로부터 시작되어 지하철 공사장이 폭발했으며 건물이 무너지고, 또 사고가 났던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어야 했다.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이 사고들이 사람에 의한 인재였으며 계속 대책을 이야기하지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시스템을 만드려는 노력이 부족하고 인적 청산만을 강조한다. KAIST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도 이런 사회적인 사고의 역사 중 하나이다. 지난 99년 서울대에서 실험실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3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세상을 떠나갔다. 하지만 그 이후 요란한 안전점검을 겪은 것 이외에는 어떠한 시스템도 구비된 것이 없다. 산업 현장에서는 요란한 안전 구호로 끊임없이 주위를 환기시키고, 지속적인 예방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은 그런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그나마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고 연구 환경을 잘 갖추고 있는 서울대와 KAIST에서조차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우리 나라의 대학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는 학생이 연구를 수행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비록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기업 연구소나 정부출연연구소는 대학보다 진일보한 안전관리시스템을 구비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연구 업무와 별로 내용이 다르지 않은 연구이지만 부족한 예산과 대학의 특성상 갖춰야 하는 연구의 유동성 등으로 인하여 안전관리는 뒷전이었다. 지금부터라도 학생들을 국가 연구개발 중추를 떠맡는 일꾼으로 인식하여 국가적 실험실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하며, 나아가 학교, 산업계, 연구소를 아우르는 국가연구시설 안전관리시스템 구축이 절실히 요구된다.

앞서에서도 밝혔듯이 과학기술인들이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정도에 걸맞는 대우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혹독한 위기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인들이 잘못한 것은 없을까? 분명히 있다. 그동안 사회가 과학기술인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일들이 과학기술계 내에서도 이루어 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학생들을 실질적인 연구 인력으로 대우하는 내부 자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사회가 과학기술인을 합당하게 대우하는 사회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열심히 노력해야 할 사람들은 과학기술인이다. 사회와 동떨어진 과학기술은 존재의 가치가 없다. 본연의 연구 업무가 대단히 중요하지만 다른 일에도 과학기술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사회 여러 분야에서 현장의 목소리는 많이 소외되어 왔다. 과학기술분야도 마찬가지이다. 꾸준히 현장의 목소리가 여러 계층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그 현장이 바로 학생들이다.

과학기술은 원칙과 법칙을 중히 여기는 학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순은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구현’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 과학기술 마인드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 과학기술이라고 하면 어려운 수학 문제 풀고 기계 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어 자연의 법칙을 찾아내고 이를 응용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과학기술 마인드는 결코 어렵지도 않으며 낯설지도 않은 것들이다. ‘과학기술 중심사회’라는 것은 과학기술이 사회에서 특별한 중심에 서자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 마인드가 곳곳에 스며드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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